가장 한국적인 곳
 신태호  06-23 | VIEW : 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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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곳은 어디인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있는 어떤 것도 ‘한국적’인 것을 담고 있지 않는 곳은 없다. 서해 바닷가에 시골마을 풍경도 한국적이고, 서울 한복판 압구정의 번잡한 거리 풍경도, 또한 한국적이다. ‘한국’이라는 방대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집합시켜 완벽히 보여주는 곳은, 정확히 말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완벽하게 한국적인 곳은, 한국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장 ‘한국적’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정체된 과거의 전통으로서의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한국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 ‘시장 바닥에 쏟아져 나오는 한국’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한국의 모든 것이 좌판에 널려 있은 곳, 황학동 도깨비 시장에 주목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들, 그 사람들이 사용해온 물건, 그 안에서 한국에서만이 담을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황학동은 가장 한국적인 모습들을 한꺼번에, 또한 매일 다르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황학동의 물건들은 우리가 과거에 사용했을 법한 물건들이다. 버려진 시계나 오래된 라디오, 유행지난 옷가지, 지금은 자취를 감춰버린 타자기,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 현재 사용하는 물건이 아닌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물건들이 황학동의 좌판을 채운다. 이것이 남대문 시장과 황학동 도깨비 시장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악해 보이는 과거의 것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남대문 시장이나 시골장터가 아니라 황학동이 더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한국의 어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불과 20년 전과 지금의 한국은 변하지 않는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이 변해왔다. 발전이라는 이름아래 많이 것이 부서지고, 또한 많은 것들이 버려졌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치판단을 유보한 채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이다. 필요 없는 것들은 사라졌으며, 필요한 것들은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모습을 만들었다. 우리는 버려진 것들은 모두 ‘쓰레기’라 취급해 버릴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쓰레기들이야 말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 황학동에는, 그 버려진 것들이 과거의 시간들을 뒤섞은 채 공존하고 있다. 십년 전, 혹은 더 오래전 우리들의 집안을 장식했던 갖가지 물건들은, 그 시간들과 기억들을 고스란히 안은 채 그 곳에 널려져 있다. 시대가 원하지 않지만, 시대를 볼 수 있는, 지금 한국, 그 어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황학동이다.

황학동은, 그 과거의 시간들을 찾으러 오거나, 혹은 정말 필요한 물건을 값싸게 구하러 오거나, 그저 구경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좌판에서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할아버지, 라이오의 소리가 나오는 귀를 대보는 아저씨, 작고 조악한 장식물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황학동의 물건들과 맞물려 다른 시대의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1972년의 모습과 2006년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 그 안에 사람들에게도 또한 같은 것을 볼 수가 있다.

지금의 황학동은 또한 몇 년 전에 많이 바뀌었다. 청계천이 복개공사를 들어가면서 그 주변 일대의 모습이 많이 바뀌게 된다. 기존 황학동에 위치했던 도깨비 시장은, 지금 그 규모를 줄이고 동대문 운동장 안에 따로 장터를 형성하게 된다. 개발의 논리가 또 다시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주변 일대는 기묘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인공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청계천과 주변에 즐비한 공구상가, 자재를 실은 트럭들이 이질적으로 어울리고 있으며, 기존 황학동 도깨비 시장은 동대문 운동장이라는 생뚱맞은 장소로 옮겨지게 된다. 누가 운동하는 운동장 안에 시장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겠는가. 천막으로 햇빛을 가린 채 더덕더덕 붙어있는 가게들은, 과거 역동적인 시장의 모습을 많이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도시가 개발될지 예측할 수 없고, 조각처럼 한국의 모습을 이어져나가는, 그 시장 좌판같은 한국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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